그림의 담론: 그림에 대한 두 가지 선택 (남택운 작가, 서이갤러리)

이시우 기자

작성 2020.04.03 14:32 수정 2020.05.26 13:50



참여작가: 남택운

전시제목: 그림의 담론: 그림에 대한 두 가지 선택

기간: 2020년 4월 14일(화) ~ 4월 26일(일)

초대일시: 4월 15일(수) 오후 3시



작가노트


Two Selections from the The Picture

(그림의 담론 : 그림에 대한 두 가지 선택)

 

이 연작은 ‘그림의 핵심을 이루는 담론’이라는 논제를 액자, 복장에서 찾아 제시한 작업이다. (This exhibition is the work of suggestion the theme of 'Core Discourse of Picture' in frame, costume.)

 

첫 번째 프로젝트 : 차이(Difference)

첫 번째 주제인 ˹‘차이’ 연작˼은 2004년 2월에 루브르 미술관에 가서 직관적으로 느낀 것을 재현하였다. 자크 루이 다비드, 렘브란트, 들라크루아처럼 미술사에서 빛나는 작가들의 액자를 루브르 미술관에서 촬영한 것이다. 작품을 테두리지은 그 액자들에서 기술적 정교함과 예술적 엄격함을 느꼈다. ‘차이’라고 제명을 붙였는데, 액자의 의미는 액자의 안과 밖을 ‘분리하는 권력’이라고 생각하였다. 액자는 '파레르곤(parergon)'이라는 개념으로 데리다가 밝혔듯이, 작품 내부의 자체적인 ‘결핍’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액자는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모호한 불확정성의 경계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장식의 견고함과 화려함 때문에 마치 프랑스미학의 허구로 보였다. 반면에 미술관의 벽이나 복도 및 기타 시설물 모두 작품처럼 보였다. 루브르 미술관 전체가 예술작품으로 보여 졌기 때문이다.

 

데리다의 ‘差延(Differance)’ 이 떠올랐다. 차연은 ‘다르다(differ)’는 개념뿐만 아니라 ‘지연(defer)’이라는 의미도 나타낸다. 두 가지 의미가 더해졌기 때문에 ‘다른 것’이 시간을 가지고 지속된다는 뜻이다. 텍스트의 의미는 결정되어 있거나 확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의미작용은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에 하나의 대체 가능한 언어해석으로부터 다른 해석으로 지연된다는 데리다의 주장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의미가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앙과 지방은 다른가? 라고 질문하면 ‘다르다’고 답변한다. 그런데 같은 질문을 50년이 지난 후에 다시 물어 보았을 때도 ‘다르다’는 답변이 즉각적으로 나오기는 쉽지 않다. 동일한 질문일지라도 시간의 개념이 들어가면 의미는 확실히 정해지지 않으며 유일한 절대 가치는 부정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시기에 파리에서 렘브란트 작품을 보게 되었다. 작품보다는 액자에 눈길이 머물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금박액자의 장식이 유럽의 궁궐처럼 웅장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액자 안은 작품이고 액자 밖은 작품이 아니라고 분리시키는 액자의 일반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액자의 의미를 ‘예술권력’으로 전환시켰다. 그래서 화면 가운데에 과장되게 위치시켰다. 액자는 예술권력이 되어 작품의 안과 밖을 가르는 힘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서구의 문화권력은 이런 차이와 분리시키는 힘에 의해서 모순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제목에서의 ‘차이’는 ‘차이가 있는 것에서 없는 것까지’를 뜻한다. 데리다처럼 차연이라고 하지 않아도 루브르의 액자들은 이미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차이’라고 제목을 정해도 내가 기술한 이 단어의 의미는 ‘차이가 있는 것에서 없는 것까지’를 뜻한다. 이 작업에 보이는 것처럼 작품의 안과 밖의 차이는 명확하지 않게 보인다. 액자는 작품 내부의 자체적인 ‘결핍’ 때문에 보충된 것 임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나누는 ‘힘’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과장된 장식으로 무장된 액자만 부각시켰다.

반면에 액자를 가운데로 위치시키고 작품과 액자와 벽을 삼등분 크기로 배치하여 프랑스 삼색기로 표현하기도 하고, 그림을 오히려 작품의 프레임에서 변방으로 배치시키고 액자들을 중심으로 재현하기도 하였다. 다른 작품에서는 액자 자체를 성상화로 보이게도 하였으며, 액자에 다가서지 못하게 하는 금지선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미술관의 금박액자들이 관람자의 시선을 어떻게 무의식적으로 포획하는지를 부각시켰다. 루브르궁의 미적권력은 이제 문화권력이 되어 그들과 우리는 ‘차이가 있는 것에서 없는 것까지’인데도 불구하고 즉, 차이가 없는데도 ‘차이’를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프린트는 이면화(Diptyque)로 하였다. 인화지를 다른 것으로 프린트하여 두 장을 붙여서 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사진은 여러 프린트 방식으로 보여 줄 수 있다. 그런데 인화지 다르면 그건 같은 작품일까 아니면 다른 작품일까? 아마도 같은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대답은 명확하지 않다.

 

두 번째 프로젝트 : 품질보증절대미(The Super High Deluxe Beauty)

두 번째 다룬 주제는 ˹'품질보증절대미’ 연작˼이다. 교황 레오 10세(Pope Leone X)는 제217대 교황(재위: 1513년-1521년)이다. 본명은 조반니 디 로렌초 데 메디치(Giovanni di Lorenzo de' Medici)이다. 이 소재는 교황 레오 10세의 망토이다. 르네상스의 메디치 가문 출신이며 교황이었으니 그의 유품을 촬영하는 순간은 르네상스 미술의 핵심이자 원천의 빛과 마주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망토 일부를 선택하여 ‘품질이 보장된 절대미’라고 제명을 정하였다. 르네상스 시기의 영광과 빛을 담았으니 ‘절대미’라고 해도 되지 않겠는가. 작품에 보이는 가늘고 희미하게 보이는 금실 자국은 서구역사에서 사라져 가는 기독교의 십자가처럼 보였다. 레오 10세의 망토를 하나의 물질로 재현하여 미니멀리즘의 ‘사물성’ 그 자체로 해석하였다. 왜냐하면 미니멀리즘이 표상하는 것은 사물의 원천이자 근거이기 때문이다.



자료제공 : 서이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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